광화문광장에 세워진 동상을 보고 왔습니다.

2011. 1. 8. 06:39여행/서울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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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전 서울의 중심부 인 광화문광장과 인사동 거리를 다녀와서 올려 드리는 글입니다. 광화문광장과 세종대왕 동상을 비롯하여 최근 보수하여 설치한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고, 다시 한번 우리나라 역사적인 장소를 둘러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역사의 현장과 세종대왕님과 이순신장군님의 일대기에서 현재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점을 생각하면서 자료를 정리하여 올립니다.   


광화문 광장

광화문광장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광화문에서 세종로사거리와 청계광장으로 이어지는 세종로의 중앙에 조성된 광장으로 600년 역사를 가진 서울의 중심거리 입니다. 세종로 중앙에 길이 555m, 너비 34m 로 조성하였는데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공간으로 사업이 추진되어 2008년 5월 27일 착공되었으며, 2009년 7월 말에 완공되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광장에는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장군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세종대왕 동상은 높이 6.2m, 폭4.3m에 4.2m의 기초위에 20t 무게의 동상이 세워졌고, 이순신장군 동상은 얼마 전 다시 보수하여 세종로의 상징으로 우뚝 서있습니다. 







세종대왕

세종대왕이 하신 일을 살펴보면 훈민정음 창제를 하신 것을 제일먼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천문학의 발전에도 혼신의 힘을 기울여 혼천의를 만들게 하였는데 이것은 천체를 관측하는 기계로 천문시계 기능을 하는 장치입니다. 그리고 해시계를 발명한 업적을 남겨 전해내려 오고 있고, 다른 나라의 해시계가 단순히 시간만을 알 수 있게 해준 데 반해, 혼천의는 해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도 알 수 있는 해시계입니다.


물시계도 명을 받은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의 신하들에 의해 자격루라는 이름으로 고안된 물시계도 있고, 장영실이 단독으로 연구하여 만든 옥루라는 물시계도 만들어 졌습니다. 강우량 측정을 위해 측우기도 빼놓을 수 없는 과학 발명품인 것을 알게 해줍니다.


이외에도 세종대왕이 하신일은 모든 음체계의 바탕이 되는 기본율관(음관)을 제정하고, 음악을 기록하는 악보를 처음으로 창안해낸 사실들이 곧 그의 중요한 업적의 내용들입니다. 김종서의 6진 개척으로 여진족들을 두만강 유역에서 쫒아냄으로서 현재 우리나라와 비슷한 영토를 그 당시 만들었습니다. 세종대왕의 업적을 살펴보니 우리나라가 현재 과학기술력으로 세계에서 뒤떨어지지 않는 것은 뛰어난 과학연구를 해왔던 민족임을 느끼게 하는 듯 합니다.   



















이순신 장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1554년 4월28일 서울 건천동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어려서 외가가 있는 충남아산으로 이사를 갔으며 1567년에 식년무과에 합격하여 함경도 변방의 동구비보 권관으로 시작했으며 1592년 2월 류성룡의 친거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임명되었습니다.


전라좌수영 대첩비에는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임진왜란에 왜적이 우리나라를 침략할 때 왜적 떼를 막지 못해 모든 고을이 깨졌으나 오직 충무공이순신 만이 용맹을 떨쳐, 옥포, 한산, 안골포 등의 해전에서 적선 2백2십여 척을 불사르고 왜적을 무찔렀다. 정유년 11월 충무공 이순신은 노량 바다에서 명의 수군과 합세하여 왜적을 무찌르다 적탄을 맞았으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하고 돌아 가셨다 바닷물이 늠실거리는 노량에 이 비석을 후세의 길이 남을, 님의 이름을 높게 들어 나라운명과 같이 하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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