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다 살아있는 동안 한번은 방문하고 싶어 한다는 이스라엘 성지순례 장소

2019. 4. 20. 23:44블로그소개/순례자 길

반응형

마사다는 AD 72~73년에 유대인들이 로마군의 공격에 맞서 저항하다 남은 사람들이 스스로 죽으면서 까지 저항하였던 요새였으나 끝내 무너졌습니다.

유대민족의 용기의 상징으로 마사다는 순례자들은 물론 유대인들의 자녀교육을 위한 방문자들의 행열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청년단체들은 이 가파른 산을 오르는 연례행사를 갖으며 새벽에 해맞이를 하는등 현재 이스라엘에서 손꼽히는 관광지가 되고있습니다.

마사다 자형은 꼭대기는 평평하지만 주변은 절벽으로 이루어진 천연 요새지형으로 로마군에 함락되기 까지 거의 2년을 버틴 마사다 전쟁이었습니다. 

이 산은 높이가 사해 해면으로부터 434m이며 정상의 면적은 7만㎡ 가량 됩니다. 마사다를 건설한 왕 가운데 가장 중요한 왕은 헤로데왕 이였습니다.

마사다를 공격하기 위한 경사로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도 무너 졌으며 마지막 항거 장소인 마사다를 로마군들은 요새로 올라가는 경사로를 만들어 수비대의 요새를 함락했습니다.

십자군들이 잠시 마사다를 차지한 시기를 제외하면 20세기까지 방치되어 아랍 사람들은 이곳을 가리켜 '앗사바'(저주받은 곳)라고 했다합니다.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왕궁, 창고, 방어 시설물, 로마군 막사, 공격 시설물 등이 발견되었으며 벽면에 검은 줄은 발견당시 쌓여있있던 토사층이라합니다.

관심을 끈 발굴물들 중에 히브리 사람 이름이 새겨진 질그릇 조각들로, 마지막 남은 수비대원들이 로마군과 싸움에서 먼저 죽을 사람을 정하기 위해서 마련한 제비뽑기였던 유물로 보기도 합니다. 

로마군과 싸움에서 먼저 죽을 사람을 정하기 위해서 마련한 제비뽑기였던 유물로 보기도 합니다. 


시카리의 지도자였던 엘르아살이 모든 가장(家長)들을 이 곳 회당으로 불러 말합니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진리되시고 정의로우신 인류의 주인이신 오직 한분 하나님의 종으로만 살아가자” 라고 말하며 최후 일전을 선언하였습니다. 

마사다 높은 곳에서 사용하는 물은 광야 한가운데 만들어 놓은 물 저장고에 물들이 가득 차게 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광야에서 사해로 흘러들어가는 빗물들을 마사다 쪽으로 물길을 틀어 마사다의 절벽으로 향합니다. 

로마군들은 마사다에서 사용할 식수를 끊으면 항복 할 줄 알았지만 마사다의 저항 유대인은 절벽 곳곳에 물 저장고들을 파 놓고 그 안으로 빗물들이 자연의 힘으로 흘러들어가게 하여 물부족은 없었습니다.

마사다 물저장고


버스두대에 타는 사람 옮기는 케이블카

마사다 정상에 자라는 식물

멀리보이는 사해 


벽면에 검은 줄은 발굴당시 퇴적층의 높이입니다.


멀리보이는 방향이 로마군 주둔지역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