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28. 14:18ㆍ여행/남부지방
5060세대는 험난하고 어려운 고난이 많았던 세대로 지나온 세월을 더듬어 보면 아름답지 만은 안은 날도 많았습니다. 남은 생의 기간이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살아가는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5060세대들이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지나온 시간 10여년 전 블로그에 올려 놓은 글을 현 시점에서 다시 글의 주제에 맞게 정리하여 올려놓은 드립니다. 원본에서 크게 벋어나지 않게 수정하여 보았습니다. 5060 지나온 세월 카카오 로드뷰로 보며 아름다운 세상을 향하여 새롭게 출발합시다.
2018년 한달 남겨 놓은 시점에 녹색주택 운영자가 드리는 인사의 글
2004년 7월경 녹색주택 운영자가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과 아래 카카오 로드뷰로 캡쳐한 사진을 거의 같은 장소에서 직접 가지 않고 최근의 주변모습을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사진자료 출처 : 카카오 로드뷰 화면 캡쳐 (풍력 발전기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캡쳐화면 소재지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보시면 확인이 됩니다.
65톤 초대형장비로 캐터필라245, 일반 굴삭기의 3배의 크기입니다. 하루에 연료(경유)를 보통 500리터(2드럼반)을 사용하는 미국산 장비이며 운반 할 적에는 버킷을 따로 분리하여 운반하고 조립합니다. 엔진 수리비만 3천 만원듭니다.
왠만한 암석은 잡아 떼어내어 높이들어 내리쳐 깨뜨립니다.산업화 초창기에는 장비기사가 사무직보다 보수가 좋았답니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역전을 하더니 지금은 다들 어려운 일이라 배우려고 안합니다.
(장소를 이동한 상하 사진은 영상을 캡쳐한 사진)
2004년 7월경 현장 숙소
사진자료 출처 : 카카오 로드뷰 화면 캡쳐
사진자료 출처 : 카카오 로드뷰 화면 캡쳐 (울산이 공업화도시가 되는 과정에 울산시 삼산면의 돗질산으로 바닷가 인접지역이라 지하수는 물이 좋지 않아 지금 처럼 수도시설이 없어 돗질이라는 낮으 막한 산으로 물을 가지러 갔습니다. 산밑에는 자연샘물이 솟아나 먼 곳에서 물을 길러 먹던 추운 겨울이 생각이나 그 곳을 둘러 보았는데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시설물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사진자료 출처 : 카카오 로드뷰 화면 캡쳐( 모래톱과 갈대 숲이 사라진 태화강변 -본문 일부내용 : 지금 보니 유달리 그래서 회음식을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네요. 마을에서 기르는 소들은 공동으로 태화강 둑으로 몰고가 풀을 먹이거나 강하류에 갈대가 우거져 있는 모래 톱으로 형성 된 섬처럼 생긴 곳으로 소떼를 몰고가 풀을 먹이곤 했습니다.)
사진자료 출처 : 카카오 로드뷰 화면 캡쳐( 도심지가 된 삼삼면- 본문 일부내용 : 그 당시 태화강을 끼고 들판가운데 제법 큰 마을이 있었지요.각지에서 몰려드는 지금의 모 정유회사 공사장의 관계자들이 주거지가 부족한 곳으로 갑자기 몰려들자 집을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은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기거하는 풍경도 보았지요.)
사진자료 출처 : 카카오 로드뷰 화면 캡쳐( 도심지로 변한 삼산면- 본분 일부 내용 : 지금처럼 블로그를 할 것 같았으면 사진에 담아 놓아 소개해 드렸으면 좋았겠습니다. 10년 이면 강산이 변한다 하였는데 5번이나 바뀌였으니 그 당시 살았던 시골집은 흔적도 없이 살아져 버려 찾는다는 것이 바보 스러워 보였습니다.)
2004년 약 14년 전 노트북으로 공사 현장에서 시간이 날 때면 근처 kt주변에서 와이파이로 인터넷을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은 작은 스마트폰으로 어디서나 인터넷을 사용합니다.
이 글을 구글번역기로 영문으로 번역하여 한 문단씩 읽어가는
음성을 영상에 자막에 넣어 화면에 나타나게 하였습니다.
5060 지나온 세월 카카오 로드뷰로 보며 아름다운 세상을 향하여 새롭게 출발
5060 A new look for a beautiful world with a view to the cacao road view
근 50여 년 전 직업이 목수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우리나라 산업화시대의 시작점에서 어려서 부터 보고자라 왔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는 몇번을 옮겨 다녀야 했지요. 오늘은 울산이 공업화도시가 되는 과정에 울산시 삼산면 이라는 곳에서 거의 2년을 살면서 50여년 전 기억을 되살 봅니다.
I have been watching from my childhood at the beginning of our industrialization era, following my father who was a carpenter about 50 years ago. So I had to go to elementary school several times. Today, as Ulsan became an industrialized city, I lived almost two years in Samsan-myeon, Ulsan city and recollect my memory more than 50 years ago.
그 당시 어린이의 눈으로 본 풍경과 장년이 되어 12년전 경부고속철도공사관계로 울산에서 가까운 언양에 거주하면서 변해도 너무 변해버린 도시화 된 울산에서 살았던 추억과 모습을 더듬어 봅니다.
I looked at the scenery and scenery that I lived in Ulsan, an urbanized city that has changed since I was living in Eonyang near Ulsan in connection with the construction of Gyeongbu High Speed Railway 12 years ago.
12년 전 경부고속철도공사현장이 쉬는 날 50여 년 전의 추억이 담긴 어릴적 2년을 살면서 초등학교 1,2학년을 다녔던 그 당시 삼산면이라는 곳을 방문하려고 길을 떠났습니다.
12 years ago, the construction site of Gyeongbu High Speed Railway was on its way to visit Samsan-myeon, which was the first year and the second grade of elementary school.
지금처럼 블로그를 할 것 같았으면 사진에 담아 놓아 소개해 드렸으면 좋았겠습니다. 10년 이면 강산이 변한다 하였는데 5번이나 바뀌였으니 그 당시 살았던 시골집은 흔적도 없이 살아져 버려 찾는다는 것이 바보 스러워 보였습니다.
If you were going to blog like now, I would like you to introduce it by putting it in the photograph. Ten years later, Kangsan was changed, but it was changed five times. It seemed stupid to find that the old house that lived at that time was alive without trace.
지금도 어느 초라한 시골지역도 개발의 바람이 불면 흔적도 없이 살아져 버리는 옛것들이 아쉽기만 합니다.잠시 사진소개 몇년전 고속철도현장으로 가기 전 공사장현장에서 찍은 제가 다니던 모 대기업 회사장비 입니다.
Even now, the shabby countryside area is unfortunate for the old ones that survive without a trace when the wind of development develops. A few photos I went to the high speed railway site three years ago.
65톤 초대형장비로 캐터필라245, 일반 굴삭기의 3배의 크기입니다. 하루에 연료(경유)를 보통 500리터(2드럼반)을 사용하는 미국산 장비이며 운반 할 적에는 버킷을 따로 분리하여 운반하고 조립합니다. 엔진 수리비만 3천 만원듭니다.
It's a 65-tonne extra-large piece of equipment, a Caterpillar 245, three times the size of a regular excavator. US-made equipment that uses fuel (diesel) for a day, usually 500 liters (2 drums and a half). Carry and assemble the buckets separately for the carriers to carry. Engine repair costs only 30 million won.
왠만한 암석은 잡아 떼어내어 높이들어 내리쳐 깨뜨립니다.산업화 초창기에는 장비기사가 사무직보다 보수가 좋았답니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역전을 하더니 지금은 다들 어려운 일이라 배우려고 안합니다.
I picked up a good rock and tore it down and broke it down. In the early days of industrialization, the mechanic was better than the desk clerk. At some point I have reversed and now everyone is trying hard to learn.
그렇지만 저는 이 장비로 작업하면서 이런 생각을 할 적이 종종 있었답니다.이 장비는 이해를 돕기위해 예를 들자면 인력으로 사람이 500명이 한꺼번에 해도 못할 만한 일을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요.장비기사가 500여명의 일꾼을 한꺼번에 움직이는 얼마나 대단합니까.
However, I have often thought about this when working with this equipment, so think of it as an example to help people understand what a man can do with 500 people at once. How great is it to move at once.
그러한 제능들을 무시를 하거나 없신여겨 기능이 좋은 분들이 떠나는 안타까운 일들도 현장에서 종종 있답니다.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을 그래서 저는 존중을 합니다.
There are also some sad things that people who have good skills leave because they are ignored or ignored. I respect people who work on the field.
기능이 부족하면 일을 잘못하여 도리어 안 한것만 못하게 되거나 2~3억이 넘는 고가의 장비가 망가지면 큰 손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기능이 좋은 분들을 우대를 해주어야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사무실 직원과 동등한 기능적 대우도 해주면 일하시는 분들이나 배우는 분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것이라고 직접 현장에서 30여 년을 체험한 이야기 였습니다.
If you do not have enough skills, you will not be able to do anything wrong, or if you have expensive equipment over 2 ~ 300 million, it will cause big damage. You should give preference to those who have good skills. It was a story of 30 years experience in the field that people who work or learn will work with pride.
그 당시 태화강을 끼고 들판가운데 제법 큰 마을이 있었지요.각지에서 몰려드는 지금의 모 정유회사 공사장의 관계자들이 주거지가 부족한 곳으로 갑자기 몰려들자 집을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은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기거하는 풍경도 보았지요.
At that time, there was a big town among the fields along the Taehwa River. As the officials of the construction company of the company, which is gathering from all over the place, suddenly rushed to the place where the residence was lacking, the people who could not save the house saw the scenery It is.
다행히 저의 가족은 허름한 헛간으로 씀 직한 방하나를 얻어 살게 되였습니다. 집주인 아저씨는 제법 좋은 집을 소유하고 계셨는데 가을이면 태화강에 꼬시레기라 하기도 타 지역에서는 문조리라 불리우는 입이 큰 고기를 낚시로 잡아 숭숭 썰어 초장에 찍어 먹던 어린 시절이 너무나 좋았던 것 같습니다.
Fortunately, my family got a room that was worthy of a shabby barn. The landlord owned a good house. In the fall, it seemed that the childhood, when he caught the big fish in the Tae Hwa River and tasted the big fish,
지금 보니 유달리 그래서 회음식을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네요. 마을에서 기르는 소들은 공동으로 태화강 둑으로 몰고가 풀을 먹이거나 강하류에 갈대가 우거져 있는 모래 톱으로 형성 된 섬처럼 생긴 곳으로 소떼를 몰고가 풀을 먹이곤 했습니다.
I do not know if you like it so much. The cows that were raised in the village were jointly driven by the Taehwa River to feed the grass or to feed the grass with the island-shaped island formed by sand-tops with reeds on the river downstream.
겨울에는 지역의 특성상 눈을 볼 수 없었고 강 하류 지역이라 들판을 가로 질러 보기드문 큰 수로가 형성되어 추운 겨울에는 얼음이 얼면 발에 신는 스케이팅을 즐기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In winter, we could not see the region because of the nature of the area. It was a river downstream area, and there were many people who enjoyed skating on ice when the ice was frozen during the cold winter.
그 당시 겨울철에는 땔감이 부족하여 20여리가 되는 곳에서 연탄을 조금씩 가져다 쓰는 것도 보았고 나무를 하러 강 건너 지금 종합운동장이 있는 곳으로 땔감을 하러 산으로 갔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At that time, I saw that I had to take some briquettes in 20 places because of insufficient firewood in the winter time. I went to the mountains to go to the mountain where I went to the forest for the trees.
바닷가 인접지역이라 지하수는 물이 좋지 않아 지금 처럼 수도시설이 없어 돗질이라는 낮으 막한 산으로 물을 가지러 갔습니다. 산밑에는 자연샘물이 솟아나 먼 곳에서 물을 길러 먹던 추운 겨울이 생각이나 그 곳을 둘러 보았는데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시설물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The groundwater is not in good condition because it is adjacent to the beach. I did not have the water supply facility like now and went to the mountain to get water by the low mountain called " There was a natural spring water beneath the mountain, and a cold winter that I used to grow water in a distant place looked around the place, and there were facilities that people could not access.
그 당시 제가 살았던 그 곳은 울산지역을 자세하게는 잘 알지 못하지만 현재 울산의 번화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큰 길과 높은 빌딩, 아파트지역으로 변하여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고 숙소로 돌아왔답니다.
At that time, I did not know Ulsan area in details but I think it is a busy area in Ulsan. I turned into a big road, a high building and an apartment area, and returned to my accommodation after feeling the gratitude of years.
이글은 10년전 블로그 초창기 올려놓은 글을 현 시점에서 다시 글의 주제에 맞게 정리하여 올려놓은 드립니다. 원본에서 크게 벋어나지 않게 수정하여 보았습니다.
This article was written in the beginning of the blog 10 years ago, according to the subject of the article again at this time. I modified it so that it does not get bigger from the original.
이 글을 구글번역기로 영문으로 번역하여 한 문단씩 읽어가는 음성을 영상에 자막에 넣어 화면에 나타나게 하였습니다. 물론 음성이나 자막을 끄는 기능도 있음므로 영상만 보셔도 됩니다. 영어공부에 도움이 될 분들도 있을 것 같아 올려드립니다.
I translated this article into English to translate it into a caption in a video and read it in a paragraph. Of course you can also turn off audio or subtitles, so you can watch the video only. There are some people who will help you study 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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